산행(山行) - 李書九
數棘荒寒堆亂石(수극황한퇴란석) 가시덤불 황량하며 어지러운 돌무더기 쌓여 있고
斜陽欲盡廢田頭(사양욕진폐전두) 석양볕이 버려진 밭머리에 지려고 하네
野棠結子珊瑚顆(야당결자산호과) 팥배나무 열매 산호처럼 맺혀 있는데
何處飛來黃褐侯(하처비래황갈후) 어디에서 청학이 날아왔나?
〚작자〛 이서구(李書九) 1754(영조 30)~1825(순조 25), 자 낙서(洛瑞), 호 척재(惕齋), 강산(薑山), 소완정(素玩亭), 석모산인(席帽山人)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노론출신 북학파
실학 북학파의 아버지 연암 박지원에 따르면 이서구는 심령(心靈)이 일찍 트이고 혜식(慧識)이 구슬과 같았다.(박지원, '연암집' 7 별집, '종북소선') 이서구는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와 함께 박지원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네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은 현실적이었고, 글들은 출중했다. 정조 눈에 들어 규장각에서도 함께 공부를 했다. 명·청을 흉내 내지 않고 독자적인 글을 쓴 이 네 사람을 '한학 사가(漢學四家)'라 부른다.
이 가운데 세 사람은 '비루한' 서얼이었다. 이서구는 14대 국왕 선조의 아들 인흥군의 후손이었다. 어엿한 노론 가문 출신이었다. 벗들이 규장각에서 책에 파묻힌 사이, 이서구는 승승장구하며 벼슬길을 걸었다. 홍문관 교리와 한성부 판윤을 거쳐 수시로 지방 관찰사로 나갔다. 그런데 그가 거쳐 간 곳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백성 뇌리에 박혀 있는 이서구는 관료가 아니라 이인(異人)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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