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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 (캘리그라피)/서예 배우기

고예와 금예의 차이점

by 움니차 202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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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예와 금예의 차이점

고예(古隸)와 금예(今隸)는 예서(隸書)의 두 가지 주요 양식입니다. 다음은 그 차이점을 나타낸 표입니다:

   고예(古隸)  금예(今隸) 
시대 전한(前漢) 시대,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 후한(後漢) 시대, 25년-220년
특징 전서(篆書)의 흔적이 남아있음 규격화되고 정돈된 형태 
필획 곡선적이고 유연함 직선적이고 각진 형태
균형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형태 균형 잡히고 정제된 형태
획의 끝 가는 형태가 많음 '파필(波筆)'이라 불리는 물결 모양의 끝 처리
대표 예시 《진원석각, 《석문표목》 《예기진》, 《서기석각》
발전 양상 전서에서 예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 예서가 완성된 형태, 후에 해서 발전의 기초


고예는 전서(篆書)에서 예서(隸書)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전서의 특징이 남아있으면서 예서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서체입니다. 반면 금예는 예서가 완전히 확립된 형태로, 더 정제되고 규칙적인 특징을 보입니다.

 

고예(古隸) 예시 

 

장천비는 <한고곡성장탕음령장군표송>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보통 <장천표송> 또는 <장천비>라고 부릅니다.

 

후한 영제 중평 3년(AD186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한나라 예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중요한 비석이며, 가로 1.07m, 세로 3.17m의 크기에 한 행 42자의 글자가 15행에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의 내용은 전면에 장천의 정치적인 업적이 기록되어 있고,후면에는 비석 건립에 참여한 기부자의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서예사적으로 이 비석은 예기비, 조전비와 더불어 한예를 대표하는 명비로 꼽히고 있으며, 이 후 찬보자비나 용문 20품에 보이는 교졸한 서체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비문의 소박하고도 웅건한 서체에 반하여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서화가 이서청(1867~1929)은 임서탁본을 남겨 이 서체를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금예(今隸)  예시

 

예기비 "이것은 한나라 영수 2년(156년) 노나라 재상이었던 한칙(韓勅)이 세운 공묘 예기비의 우측이다. ‌‌필법은 정교하지만 좋은 탁본이 아니어서 애석하였는데, 작은 소품이라 하더라도 족히 감상할만은 하다. 당나라의 예서 명필이었던 한택목(韓擇木)이나 채유린(蔡有鄰)과 같은 사람들은 꿈에서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예기비는 노나라 재상인 한칙이 공자묘를 수리하고 예기를 정리한 공적을 칭송한 비입니다. 비석의 뒷면과 좌우 양면에는 비석을 세울 당시 기부한 관리의 이름과 금액이 새겨져 있습니다.
후한 시대 후기는 예서의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는 팔분예의 최고 전성기입니다. 예서는 물결 모양의 파책이 있고 없고에 따라 고예와 팔분예로 구분하는데요. 당나라 때 장회관과 이양빙은 글자의 형태가 팔자와 같아서 팔분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합니다.
당시 팔분예 비석 중에서 예기비는 그 전형적인 형태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명·청 시대의 여러 학자도 예기비를 예서의 최고봉으로 논평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탁본은 예기비의 우측면으로, 조선 시대 역관이었던 역매 오경석(1831~1879)이 소장하던 것입니다. 탁본의 아래에는 오경석이 쓴 글이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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