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후감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이 책을 다 읽는데 3주는 족히 걸린 것 같다. 나름 정리한 필독 교양도서 순위 상위권에 있었고, 마침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유대인 학살범인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받는 재판의 과정을 쓴 책인데 소개글을 보면 철학책, 인간의 악의평범성이라는 어려운 말들이 오가길래 궁금하기도 했다. 15장에 걸친 긴 재판의 과정동안 아이히만이 나치스 소속으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소상히 나열되고, 이것이 과연 개인의 범죄인가, 국가의 명령을 받은 것이 죄가 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관점도 제안한다.
다 읽고 나니 나에게 무언가 남기려고 한 것 같아 찾아보았다. 저항할 수 없는 나치스의 반유대인 정책일 것 같지만 주변 국가(예: 덴마크, 볼라비아)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유대인들의 생존율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고, 이는 개인으로 치면 내가 어떤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 복종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그래야만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이걸 보면서 세 가지 경우가 생각났다.
1. 기업 채용 면접 볼때 단골문제 중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내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질문을 이 책을 본 사람이라면 네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당함이 회사에 해가 되고 상사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인지 회사를 위하지만 위법한 내용인지에 대한 자세한 배경없이 툭 던지는 질문들에 많은 청년들은 모범답안을 연구하고 답한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히만에 대한 행동을 비난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비판의식을 누르는 사회가 어떤 발전적인 양상이 나올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다.
2. 또 하나는 2024년 12월에 일어난 계엄사태이다. 지금도 많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때 당시 고위대작들이 한다는 말이 자기는 내란의 의도가 아니었고 계엄이라는 명령을 본의아니게 따른 것이 되었기에 죄가 없다는 논리들이 판을 친다. 그건 가족한테나 할 말이고 한 나라의 수장과 무리들이 그리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에서 말살시켜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승리해서 혁명이 된 12.12 같은 경우도 실패해서 반란으로 끝났다면 그 무리들이 뭐라고 변명했을지 뻔하다. 공무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악의 평범성. 결국 악을 저지른 건데 이에 대한 인지가 안된건지 인정하기 싫은건지 목숨줄 찾으려고 세운 억지 논리에 봉착된건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히만은 끝내 유대인에게 깊은 사죄는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유로 체포, 재판, 사형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희생자들이 통쾌할만한 재판이 결코 되지 않았던것이다.
3. 친일파를 아이히만에 대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치스에 협력한 유대인 리더들이다. 더 나쁜 놈들이다.
이렇게 할 말이 많은걸 보니 지루한 시간의 터널을 지난 보람이 있다. 인생의 매순간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조심하고, 착하게 살도록 노력해도 결과론적으로 그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 이러한 정상적인 모습은 잔혹한 일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 사실상 인류의 적인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거나 느끼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 모든 재판의 초점은 개인의 역사, 특질과 교유성, 행동 유형, 상황 등 항상 독특성을 지닌, 살과 피를 가진 한 인간인 피고의 인격에 있다.
-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 명확히 범죄적인 명령들에 복종해서는 안된다는 점
- 인간들은 자기를 이끌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판단뿐이고, 게다가 그 판단이 자기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간주해야만 하는 것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일 때조차도, 사람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 모든 정부는 그의 선임 정부의 행위와 과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으며, 모든 민족은 과거의 행위와 과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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